전문가 "환율개입 신중해야"
원화 가치가 한 달 새 5% 추락하면서 환율이 달러당 1500원선에 바짝 다가간 가운데 외환당국의 환율방어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대 아래로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론이 나온다. 전문가들은 현재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만 정치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자본유출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.
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·달러 환율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가 확정된 지난 11월 6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1400원을 넘어선 뒤 12월 27일 1480원 선을 돌파했다.
전문가들은 국내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원·달러 환율 상단이 1500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. 이 과정에서 당국이 환율방어에 나서 외환보유액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론도 제기된다.
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달러로 집계됐다. 외환보유액은 2021년 10월 4692억1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뒤 이후 감소세를 지속해왔다.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이후 지난달 말까지 300억달러 이상 축소됐다. 외환보유액 규모만 보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중국, 일본, 스위스, 인도, 러시아, 대만, 사우디아라비아, 홍콩에 이어 세계 9위 수준이다.
일각에서는 원·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당국의 환율개입이 길어지면서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.
다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외환보유액은 충분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. 단순히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대로 떨어진다고 해서 외환위기로 내몰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.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"환율방어를 위한 적정 규모보다 더 많이 (달러를) 갖고 있는 것이 사실"이라며 "한국이 외국에서 받을 돈이 줄 돈보다 많은 순대외채권국이라는 점도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상황이 다르다"고 말했다.
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은 "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, 순대외채권 3가지를 모두 봐야 한다"며 "경상수지가 8000억달러 흑자이고, 순대외채권도 2000억원이 넘어 외환보유액까지 합치면 6000억~7000억달러 수준이다.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대로 떨어지더라도 외환시장에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"고 전했다.
전문가들은 정국불안이 장기화되면서 자본유출이 지속될 경우 금융부실과 경제위기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.
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"정국불안이 계속되면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면서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"며 "원화값이 더 급락할 수 있고, 국내에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금융부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"고 경고했다. 김 교수는 "자본유출이 많아지면 위환위기가 올 수 있고, 경제위기 위험도 높아질 것"이라며 "현재로서는 국내 경제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환율 상승과 외환시장"이라고 덧붙였다.
당국이 외환보유고를 헐어 환율방어에 나서더라도 정국혼란이 계속되는 한 원화값을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. 김 교수는 "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한다고 해도 원화값 급락 원인을 컨트롤할 수 없어 외환보유액만 소진하는 꼴이 될 것"이라며 "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수준 이상의 과도한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"고 짚었다. 그는 또 "환율 상승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"며 "내수침체를 막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추경을 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운 상황"이라며 "쓸 수 있는 카드는 금리인하와 대출규제 완화 정도"라고 부연했다. 다른 견해도 있다. 우석진 교수는 "미국의 금리인하 횟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도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줄었고, 금리인하로 가뜩이나 높은 환율을 자극할 수 있다"며 "지금으로서는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"이라고 말했다.
sjmary@fnnews.com 서혜진 기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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